그날, 빗속의 그대에게

📩 그날, 빗속의 그대에게


가을비가 주르륵 내리던 그날,
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차창 너머로,
우산 하나에 의지해 누군가를 기다리던 당신의 모습.
어쩐지 슬퍼 보였고,
무언가 오래된 그리움을 꺼내어놓는 것 같았지요.

차를 세우고
비에 젖은 당신이 내 곁으로 스며들던 순간.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끝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창 유리에 비친 당신의 눈빛 속에서
어떤 사연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어요.
무엇이 당신을 그 빗속에 세워두고 있었나요.
나는 묻지 못한 질문들로 가득했지만,
그저 20대 소년처럼
당신에게 마음이 설레기만 했습니다.

함께 본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어둠 속에서
살며시 잡았던 당신 손의 온기,
그 떨림만이 또렷합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정말 아쉬웠어요.

“헤어지기 아쉬운데…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쏟아지는 비 속,
창가에 앉아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서툴렀던 내 말에도
밝게 웃어주던 당신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비는 계속 내렸고
그 모습이 꼭
당신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이 시간이 끝나버릴까 두려워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요.

“조금만 더… 이야기할까요?”

당신은 미소로 대답했고,
우리는 다시 차 안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들었습니다.

살며시 닿은 손끝 하나에
두근거림이 퍼졌습니다.
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당신을 알고, 듣고, 느끼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그 마음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조용한 길 위,
어둠 속으로 멀어지던 당신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을밤의 찬 공기처럼
오랫동안 나를 감돌았지요.

그날의 당신,
빗속의 그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추억 속에
한 페이지가 되어
고요히 남아 있습니다.

가을비가 또 내리는 날이 오면,
그날의 당신을 다시 떠올릴 것 같습니다.

당신의 벗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계절의 길목에서
편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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