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편 ㅡ <그해 여름, 우리의 온도>

<<22편 ㅡ <그해 여름, 우리의 온도>>
— 이중 독백으로 엮은, 미정와 경호 이야기 ㅡ


햇살이 부서져 내리던 여름날 오후,
우리는 낡은 카페의 창가에 마주 앉아 있었다.
갓 내린 커피 향이 공간을 은은하게 채웠고,
창밖으로는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진접의 풍경 속에서,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이 흐르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오빠, 그거 알아? 가끔은 모든 게 꿈같아.”
미정,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한 오후의 공기처럼 부드럽게 내게 내려앉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꾸밈없는 얼굴, 맑은 눈동자.
그 안에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꿈이라…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졌다.
그녀의 맑은 눈을 마주할 때마다,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애써 그 마음을 감추며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

“응, 좋은 꿈이지. 경호오빠랑 함께 있는 지금도.”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찻잔을 매만졌다. 그 작은 손짓 하나에도 나는 온 신경이 쏠렸다.
처음 만났던 날, 서툴게 인사를 건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색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이끌렸던 그날의 공기,
그 떨림.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사실… 나는 조금 무서워.”
나의 고백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어서. 언젠가 이 모든 게 사라져 버릴까 봐.”

사랑이 깊어질수록 두려움도 함께 자라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녀를 너무나도 아끼는 마음에, 행여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 우리의 세계가 흔들릴까 노심초사했다. 완벽한 행복 앞에서는 누구나 겁쟁이가 되는 법이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수만 가지 생각을 했다.
너무 솔직했나. 괜한 걱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아닐까. 그때,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내 손 위로 포개졌다.

“괜찮아. 만약 꿈이라면, 우리 같이 가장 행복한 꿈을 꾸면 되잖아. 그리고 혹시라도 꿈에서 깨어나면… 그때는 내가 옆에 있을게.”
미정의 말 한마디가 나의 모든 불안을 녹여내리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나의 가장 깊은 불안을 다정함으로 감싸 안아주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위로였고, 구원이었다. 나는 미정이는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이 꿈이 계속되는 동안, 아니 꿈에서 깨어난 현실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미정이 곁을 지키겠다고.

“고마워. 정말….”미정아,,,,
나는 가까스로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는 그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미소 하나면 충분했다.
우리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때로는 불안에 흔들리고, 때로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다시 단단해지면서.
창밖의 여름은 어느새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했다. 뜨겁지만 때로는 애틋하고, 불안하지만 서로가 있어 기어이 완전해지는, 그해 여름, 우리의 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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