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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있어서 기쁜가.

아니면 고통스럽나 ?

불교의 경전중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숫타니파타) 이다.

그 경전에.
악마와 붓다가 주고받은
시 형식의 짧은 대화가 나온다.
악마가 말했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에 대해서 기뻐하고.

소를 가진 사람은 소가 있는 것을 기뻐한다.
이런 물질적인 집착 이야말로.

인간의 기쁨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런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있을수 없다.

이 말을 들은 붓다가 답했다.
자녀를 가진사람은 자녀 때문에 걱정하고.
소를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걱정한다.

인간의 근심 걱정은.
이런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나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심도 걱정도 있을수 없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갠지스강을 건너.
다섯 수행자가 있는 바라나시로 무려 330km가 넘는 먼길을 몸소 걸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북을 울리기 위함) 이었다.

경전을 읽을수록.
마음에 북이 울린다.
문장을 바꿀때마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북이 울린다.

두리두리. 두리두리.
두둥둥 ! 두둥둥 !

그렇게 내 마음에서 북이 울릴때마다 떨어져 나간다.

내 눈을 덮고 있던 먼지 (어리석음.탐욕.아집과 독선.오만과 교만) 가

툭 ! 뚝 !
떨어져 나간다.
악마는 말한다.
집착하라.

집착이야 말로 살아가는 기쁨이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소와 돈과 재산에 집착하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라.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집착하라.
육신적인 쾌락에 집착해라.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에 집착해라.
이런 집착이 없다면.
삶의 기쁨도 없다.

악마는 우리에게 당근을 내민다.
당근의 이름은 ( 착) 이다.

당근을 선뜻 받아든 우리는 그게 당근인 줄 모른다.

왜 그럴까 ?
세상의 모든 (착) 은 포장지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사랑.

이라는 포장지에.
명예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대의명분.
이란 포장지에.
꼬깃꼬깃 쌓여있다.
그래서 당근인 줄 모른다.

집착이 집착인 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이라 착각하며 산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착각하며 산다.
그러니 악마의 속삭임은 달콤하기 짝이 없다.

붓다의 눈은 달랐다.
당근 뒤에 도사린 고통을 봤다.
악마가 말한 ~기쁨의 뿌리~ 가

실은

~고통의 뿌리~ 임을 꿰뚫어 봤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에게 집착할수록 기쁘다고 ?
과연 그럴까 ?

가만히 들여다보자.
자식에게 집착할수록 오히려.
걱정이 더 생기지 않는가 ?

학교에 등교는 잘했을까 ?
혹시 교통사고는 나지 않았을까?
수능시험은 잘 볼까 ?

좋은 대학에 갈수 있을까 ?
좋은 직장에 취업 할수 있을까 ?

좋은 배우자를 만날까 ?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까?

혹시.
이혼하면 어떻게 할까 ?
하던  사업이 부도나면 어떻게 할까 ?
다니던 직장에너 짤리면 어떻게 할까 ?
근심과 걱정은 끝없이 달려간다.

그 엔진이
바로.
(착) 이다.
2600년전.

붓다는 마침내 녹야원에 도착해.
다섯비구니 들에게.
마음의 북을 울리기 시작했다.

붓다는 우선 ~쾌락과 고행~ 을 겨냥했다.
이 둘을.
양극단 이라 불렀다.
당시의 인도사람 들은 두갈래 였다.

세속의 사람들은 계급사회 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했고.

출가수행자 들은 절대적 고행을 추구했다.
어느 쪽으로 달려도.
달라 붙기 마련이다.

접착제 때문이다.
붓다는 둘다 아니라고 했다.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길로 가자고 했다.

그 길의 이름이 (중도) 이다.
그래서.

중도에는 집착과 아집.
고집과 불통이 없다.

예수도 그랬다.
나는 가장 높은자요.

가장 낮은자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시작과 끝이다.
예수의 길도 양극단을 쫒지 않았다.

알파만 쫒지않고.
오메가만 쫒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
하느님 나라의 속성이 (착) 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에서는.
자기십자가 를 통과하며 착을 무너뜨린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 에서.
심령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것 이다. 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설하신 천국의 개념이 과연 무엇일까 ?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불멸  하는 자리다.

바로.
이 (착)이 없는 자리다.
텅 비워진 맑고.

밝고.
깨끗하고.
청결하고.
청정한 마음의  자리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길과 붓다가 걸었던 중도의 길이 서로 통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다섯 수행자 중 콘단냐가 먼저 눈을 떴다.

그는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 는 이치를 깨달았다.

참으로 콘단냐는 깨달았다 !
참으로 콘단냐는 깨달았다 !

며 몇차례 감탄했다.
붓다는 감격 했을 것 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처음에는 가르침을 펴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누구도.

이 오묘하고.
신묘망측한 (깨달음) 의 진리를.

받아 들이지 않을것 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불가능 하다고 여겼다.
아무도 넘어올수 없으리라 !
고 여겼던 ~깨달음의 땅~ 으로.

첫번째로 콘단냐가 들어온 것 이다.
그러니 붓다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

사람들은 그런 콘단냐를 안나 콘단냐(Anna-Kondanna).

라고 불렀다.
깨달은 콘단냐.라는 뜻이다.

이치를 꿰뚫은 콘단냐 에게 더 이상 의심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머지 네 수행자도 얼마 안가서 깨달음의 눈을 떴다.

그러자 사슴동산 에서 붓다는 이렇게 선언했다.

여기.
여섯명의 아라한 (깨달은이) 이 있다!
다섯 수행자와 붓다 자신 까지 포함한 숫자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곳을 ~초전법륜지~ 라고 부른다.

붓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렸다.

그 바퀴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있다.
철커덩.철커덩.철커덩!!!

철커덩.철커덩.철커덩!!!
철커덩.철커덩.철커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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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좋은글> 中에서-
>이미지 출처  -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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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닙니다.
좋은글을 옮겨와 공유하는것이니 작가님들의 작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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